뮤지컬 '라흐 헤스트' 공연사진. '동림' 역의 김주연(왼쪽), '이상' 역의 임진섭(홍컴퍼니 제공) "향안. 그 이름을, 당신의 아호를 주세요. 김향안으로 살아가겠어요."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변동림이 고심 끝 김환기와 결혼을 결심했을 때 그에게 바란 건 딱 한 가지, 그의 아호였다. '고향의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김환기의 아호는 그렇게 동림의 이름이 된다. 변동림에서 김향안으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시인 이상과 서양화가 김환기 아내인 김향안(1916~2004, 본명 변동림)의 삶에 주목한다. 이 공연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예술은 남다'라는 뜻으로, 김향안이 남긴 글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에서 따왔다.김향안의 인생이 두 가지 시간 축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천재 시인' 이상(1910~1937)과 만나고 사별했던 '동림'의 삶은 순차적인 시간 흐름으로 나아가고, 김환기(1913~1974) 화백과 만나 여생을 함께한 '향안'의 삶은 시간의 역순으로 거슬러 펼쳐진다. 두 시간을 대비시켜, 사랑과 예술이 그의 인생에서 어떻게 엮이고 풀려나갔는지를 표현한다.이 공연에서 드러나는 김향안은 사랑에 용감한 '모던 걸'이다. '책벌레'였던 스무 살, 다방 낙랑파라의 단골손님 이상을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사랑이 깊어지던 어느 날, 이상은 묻는다. "우리 같이 죽을까, 어디 먼 데 갈까." 이를 프러포즈로 받아들인 김향안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와 그와 살림을 차린다.그러나 이상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둘의 불꽃 같은 사랑은 부부로 산 지 넉 달 만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로부터 7년 뒤 김향안은 김환기와 결혼식을 올린다. 알려진 대로, 당시 김환기는 이혼 경험이 있고 딸 셋을 둔 남자였기에 김향안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김향안은 이름까지 바꾸며 사랑을 선택한다. 1944년 김환기와 김향안의 결혼식(뉴스1 DB)ⓒ(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 김향안, 이상·김환기의 '예술적 동반자'두 천재 예술가의 든든한 격려자였던 모습도 생생히 그려진다. 극 중 이상은 말한다. "참 이상해, 사람들은 내 말줄임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동림은 알아주니 말이야." 그렇듯 김향안은 그의 작품 속 숨겨진 뜻을 정확히 '해독'하 기자의 개인적인 얘기를 짧게 하자면, 봄이 오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부쩍 생각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외할아버지와 몇 년간 함께 살았는데, 노쇠한 외할아버지는 외출이 어려워지자 TV를 벗 삼아 시간을 보냈다. “전국! 노래자랑”이란 멘트를 배경음악으로 일요일 점심을 드셨고, 모두가 출근하는 평일엔 전국 각지의 삶을 들려주는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보며 “하하, 허허” 웃으셨다. 최근엔 전업주부가 된 엄마가 역시 <아침마당>을 보며 가족들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외할아버지와 엄마까지 2대의 일상을 컬러풀하게 만든 <아침마당>을 오랜 시간 지켜온 터줏대감이 바로 김재원 아나운서다. 말하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가 신간 <엄마의 얼굴>(달먹는토끼)을 내놨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장모님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에세이는 베스트셀러가 돼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아침마당>은 제 인생의 과외 선생님이에요. 출연자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더 겸손하고 순수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제 <아침마당>과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년 퇴직까지 귀한 프로그램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출간한 책 중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한 에세이는 <엄마의 얼굴>이 최초입니다. 13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4년 후에 생긴 두 번째 엄마인 장모님이 30년 동안 엄마 역할을 해주시다 지난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를 애도하는 아내와 처형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제가 엄마를 애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애도의 한 방편이 글쓰기와 말하기였죠. 진정한 애도는 엄마의 죽음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에 책을 썼습니다. 아내가 어떻게 애도를 했나요? 사실 저는 애도가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저 음식은 엄마가 참 좋아했는데”라든가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우리 집에서 살았겠지?”라는 식으로 장모님이 등장했어요. 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았는데 우리 부자의 대화에서 엄마는 절대 등장하지 않았거든요. 내가 제대로 애도하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많은 이들이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죠. 당사자보다는 듣는 사람이 불편하니까요. 내가 얘기를 꺼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