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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4-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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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빵에 폭신폭신한 마시멜로가 들어 있는 ‘초코파이’를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이런 한국의 대표적인 과자가 러시아, 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크게 사랑받고 있다. 이미 글로벌 국민 디저트가 된 초코파이 열풍에 힘입어 오리온은 글로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83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식품기업으로 최근 5년 이내 최대 수준의 투자 규모다. 러시아와 베트남에서 초코파이가 국민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오리온 공식 블로그 최근 오리온은 ‘글로벌 중장기 성장기반 구축’을 목표로 국내외에 83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먼저 충북 진천 통합센터에 4600억원을 투입해 축구장 26개 크기의 원스톱 생산기지를 건설한다. 올 중순 착공을 시작해 국내·해외 수출 물량을 모두 늘릴 계획이다. 러시아·베트남 등 해외 법인의 투자도 늘린다. 특히 러시아 법인은 현지 판매 물량이 6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할 정도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공장가동률이 120%를 넘어섰지만, 초코파이 공급량이 늘 부족할 정도로 현지 반응도 뜨겁다.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에서만 전 세계 초코파이 판매량의 40%에 해당하는 16억 개가 팔리기도 했다. 이런 초코파이 열풍에 힘입어 오리온은 올해 2400억 원을 러시아 현지에 투자한다. 트베리에 새로 공장동을 건설하고 비스킷·스낵·젤리 등 16개 생산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한 마켓에 진열된 초코피아. 오리온 그렇다면 초코파이의 해외 인기비결은 뭘까? 오리온의 홈페이지 자료를 보면, 러시아의 초코파이 사랑은 꽤 오래됐다. 1990년대 초반 부산의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 사이에서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자 1993년도에 수출을 시작했다. 2006년 트베리 공장에 이어 2011년 노보에 생산 공장까지 현지 공장을 설립했고, 2012년 트랜스지방 제로 실현 인증, 2014년 식품안전시스템인증을 받는 등 현지 소비자 맞춤 방안을 이어갔다. 러시아인 에바(왼쪽)가 러시아인들이 차와 함께 초코파이를 같이 먹는다고 전했다. 오리온 유튜브 영상 캡처 또 2019년부터 러시아의 ‘다차’(텃밭이 딸린 시골 별장)에서 농사지은 베리류를 잼으로 먹는 현지 문화에 착안해 라즈베리·체리·블랙커런트·망고 등 잼을 활용한 초코파이도 출시했다. 이에 [서울=뉴시스] '14사도화'와 '로사리오(묵주기도) 15단 유리화' (사진=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2025.04.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김정하 인턴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인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 관련 유물들이 숨겨진 근현대사박물관이다. 명동성당은 19세기 유리화를 비롯해 20세기 성화, 초상화, 조각상까지 다양한 근현대 예술품들로 가득하다.전문가 해설을 들으며 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2025년 상반기 명동대성당 도슨트 투어'가 진행 중이다. 김진화 도슨트는 지난 2일 올해 첫 명동대성당 도슨트 투어를 시작하며 "명동성당에 와서 그 특징을 알게 되면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유럽식 고딕 성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김 도슨트에 따르면 유럽지역 성당 내 작품들은 성경 내용이나 성경 인물을 주제로 표현한 게 대부분인데, 명동대성당의 예술작품들은 한국 천주교회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명동성당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유기도 하다. [서울=뉴시스] 2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진행된 '명동대성당 도슨트 투어' (사진=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2025.04.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근현대 천주교 역사의 결정체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은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처, 최초 조선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현 중구 소공동) 인근에 자리했다. 명동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1842∼1896) 신부가 설계하고 파리외방선교회의 재정지원으로 세워졌다. 조선교구 제7대 교구장 블랑(1844-1890) 주교가 시작한 토지매입은 1882년 시작됐으나, 성당 터가 조선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영희전과 가까이 있어 풍수지리상 곤란하고 궁궐이 내려다 보인다는 이유로 조선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성당 건설에 난항을 겪었다. 이후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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