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퀵플렉스야간 일러스트 = 토끼도둑 선거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 성준은 식탁에 서둘러 앉았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이 무척 반가웠다. K시 지방대학 정치학 교수인 성준은 주말에나 누리는 이런 호사에 약간 무장해제된 기분이었다. 아내가 불쑥 말했다. “당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정치학자라는 사람이?” 어, 이거 다시 무장을 갖춰야겠는데, 하는 사이 성준의 입에서 걸러지지 않은 대꾸가 튀어나왔다. “무슨 얘기야, 다짜고짜로?” “지난번 글을 보니 국힘 후보를 은근히 두둔하던데 어떻게 내란세력을 비호할 수 있어? 정치학자가.” 두둔한 것은 아니었다. 내란 운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내란 대신 작란(作亂)으로 규정했던 지방신문 기고문을 아내가 벼르고 있었던 거다. 계엄령으로 통치했던 박정희는 내란 수괴일까? 정치학적으론 따져볼 두어 개 쟁점이 있었다. “그게 장난이라고?” 아내의 손맛이 밴 육개장을 한술 뜨는 순간 성준은 투항과 저항 사이를 오갔다. 어차피 증거가 명백하니 무조건 투항은 비굴했다. “장난이 아니고 작란. 난을 일으켰다는 뜻이지.” “아니, 그게 그거지, 말장난일 뿐이야.” 아내는 단호했다. 푸근한 주말 분위기는 애초에 글렀음을 깨달은 성준은 자신을 경계하면서 말했다. “내란은 말이야, 허균이나 김옥균 같은 정변에 맞는 용어잖아. 권력 탈취가 내란인데 대통령이 내란을? 형용모순이지. 말 나온 김에 민주당도 내란을 부추긴 책임이 있지 않은가?…” 육개장이 식고 있었다. 숟갈을 내려놓으면서 아내가 판결을 내렸다. “그게 문제야, 당신은. 정치학자가 태극기 부대 같다니까.”성준은 태극기 부대는 아니지만 아내의 단정을 반박하기엔 증거가 궁색했다. 박근혜를 찍었다! “어떻게 유신의 딸을 찍어, 당신도 학생 때 성명서 썼다고 도망 다닌 거 잊었어?” 성준이 노무현을 찍을 때만 해도 아내는 정치학자 남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런데 이후 약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박근혜에 이르러 의심의 눈초리가 거세졌다. 급기야는 성준이 기고하는 지방지 칼럼을 밑줄을 치면서 검토했다. 검열관이 따로 없었다. “유신 시대 검열도 당신처럼 그렇게 치밀하진 않았거든요.” 성준은 폭력적이란 말 대신 치밀하다는 아부성 단어로 어감을 바꿨다. 계산 끝에 나온 하소연이었다. “박근혜가 언제 정치 경험을 쌓았나? 아버지 후광을 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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